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듣는 대사 가운데 하나가 "종사를 보전하소서!"가 아닐까 싶다. 종사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말하는데, 둘 다 국가를 대신하는 말로 쓰였고, 왕조가 시작될 때 궁궐보다 먼저 짓는 게 바로 종묘와 사직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종묘는 왕실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고, 사직은 대지의 신인 社와 곡식의 신인 稷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고 유교사회에서 조상을 기리는 두 가지가 가장 중요했던 건 당연한 일일 테고, 이 책에 따르면 ‘먹고 사는 문제’인 사직이 종묘보다 서열이 더 높은 제사대상이었지만, 실제로는 왕들이 사직보다는 종묘에 훨씬 자주 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재미있는 사실을 여럿 알게 되었는데, 사직과 종묘는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특히 고려는 대내적으로 황제국을 자칭했기 때문에, 중국의 제후국으로 사대외교를 하던 조선에 비해 사직의 크기도 더 컸다고 한다. 물론 고려도 대외적으로는 감히 황제국을 자칭하지는 못했다. 대내외적으로 황제국을 선포한 건 물론 고종에 와서이다.
제사를 지내는 여러 형식절차를 정하기 위해 중국에 사신을 보내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으나 중국은 여러 정치적 이유로 거절했고, 그에 따라 조선은 ‘차라리 잘 됐다, 간섭도 안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자체적으로 연구하여 정했다. 조선 왕 가운데서는 특히 정조가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종묘에서 자주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제사를 올리기 여러 날 전부터 왕족과 신하들이 파나 마늘 같이 냄새가 심한 음식을 먹지 않고 미리 종묘에 들어가 숙식을 하는 등 마음과 몸을 엄청나게 다듬고 경건하게 제사를 모셨다. 왜란과 호란 시에는 왕이 피난을 가면서도 종묘, 사직의 신주와 위판을 가지고 떠날 정도였다. 신주(神主)란,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는 신이 기대는 곳을 말하는데, 죽은 이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이다. 위판(位版)은 신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말 그대로 신주를 ‘신주 단지 모시듯’ 했던 셈이다.
지금 종묘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고, 예전의 모습 거의 그대로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일제가 공원으로 바꿔버린 사직(지금도 사직공원이다)은 원형 보존을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2년 전에 종묘에 가서 둘러본 적이 있는데, 규모가 더 큰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정감이 가는 아름답고 우아한 곳이었다. 마음 깊숙이 우리 옛 건물과 전통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종묘는 창경궁과 담 없이 이어져 있어서 두 곳을 같이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지은이:강문식, 이현진(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출판사:책과함께(2011년)


큰 기대 없이 봤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무신론자이며 특히 카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매우큰 내가 이 영화에 비친 트라피스트회(Trappist, 관상회) 수도사들의 삶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인간에게 과연 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다시 해보기도 했으니까. 물론 아직 답은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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