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Tokyo-Ga 80년대 영화


빔 벤더스, 그의 영화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별 것도 없으면서 괜히 지적인 척, 멋진 척 한다는 막연한 느낌만 줄 뿐이라서. 특히나 서구인이 다른 세계를 보는 시각의 한계를 잘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처럼 말이다. 그냥 감상적인 접근. 뭐 내가 틀렸다면 어쩔 수 없고. 암튼 그럼에도 내가 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벤더스의 다큐영화를 본 유일한 까닭은, 바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 때문에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벤더스는 오즈를 숭상하는 영화인으로서 오즈의 영화에 나오는 일본의 모습을 확인하러 처음으로 일본에 간 것이다, 물론 남아 있는 건 거의 없었지만....

때는 1982년이다(영화 발표는 85년). 영화의 첫 시퀀스는 오즈의 대표작 <동경 이야기>의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벤더스의 오즈에 대한 찬사로 시작해서 나름 오즈의 영화세계를 엿볼 수 있으려나...기대를 했지만, 이어지는 건 일본에 처음 간 벤더스가 너무나 낯선, 그리고 오즈의 영화와는 너무나 따로 노는 최첨단 현대 일본 대도시 동경의 괴이쩍은 모습들(빠찡코에 반 미친 사람들, 필드에 나가지는 않지만 연습장 골프에 신들린 사람들, 50년대 미국 록커빌리 문화를 어설프게 흉내내며 노는 십대들 등)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하는 내용 없고 통찰력 또한 없는 공허한 주절거림 정도. 작가인 척 하느라 그랬는지 오즈 영화의 두 중추였던 배우 류 치슈와 촬영감독 아수타 유하루의 긴 인터뷰도 인터뷰 내내 번역이 깔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적당히 압축해서 번역해 주는 바람에 관객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를 듣고 있어야 한다. 이건 뭐 일본 관광 홍보용 영화인지, 오즈에게 바치는 헌정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중간에 우연히 토쿄 타워에서 만난 같은 독일 감독 베르너 헤르초크는 짧은 인터뷰에서 자기가 찾는 '이미지'기 일본에 없다고 핏대를 세운다. 아마도 <핏츠카랄도>에서 찾았던 아마존 정글 같은 원시적이고 때묻지 않은(서구인에게) 이미지를 말하는 모양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서구인들이 동양에 대해 갖고 있는 유치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을 보는 듯 해서 입맛이 쓰다. 자기들이 잃어버린 '어떤 것'을 문명이 뒤떨어진 동양은 갖고 있겠지...하는 막연한 생각과, 막상 와서 보면 서양과 별 다를 바가 없이 발전해 있는 모습에 실망을 느끼는 부류들....뭔가 고즈넉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자기들처럼 삐까번쩍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적당히 가난해 보이는 모습....그런 것에서 '차이'를 느끼고 싶은 그네들의 욕구를 거대 도시 동경은 채워 주지 않았던 게다. 저런....

나는 오즈 야스지로를 존경하고, 그의 영화는 거의 다 보았다. 오즈의 영화는 지극히 일본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다. 그래서 그가 거장인 것이다. 그의 영화에는 진실이 있다. 하긴 벤더스도 그걸 잘 파악하고 있다. 요즘 영화에는 그런 진실이 없다고 개탄하면서. 그런데 불경하게도 오즈 때문에 일본까지 가서는 그냥 곁다리만 짚고 돌아온 셈이다.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오즈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벤더스의 뻘짓과 무관하게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팬이라면 반드시 감상해야 할 보고이다.


세나(SENNA) 2010년대 영화

일단, 영화 포스터가 멋지다. 올해 영국의 아카데미상이라는 BAFTA(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의 기록영화 부분 수상작품이다. 이 영화의 최고 미덕(?)은 자료화면 중심이고, 인터뷰가 거의 없다는 점. 지난 번에 역시 이 부문 후보작이었던 조지 해리슨 전기 기록영화도 봤는데, 온갖 인간들의 인터뷰가 끊임없이 이어져서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기록영화 만들 때 가장 만만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인터뷰 갖다 끼워 넣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Ayrton Senna라는 사람은 전설적인 브라질 출신 자동차 경주 선수였다. 나처럼 그런 세계와는 담쌓고 사는 사람을 위해 그가 활동한 F1이라는 경기를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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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포뮬러 자동차 경기 중 하나.

포뮬러(Formula)는 경주용 자동차를 이용한 온로드 경기를 말하는데, 주관단체인 세계자동차연맹(FIA)에서 규정한 차체 엔진 타이어 등을 갖추고 경주하는 것을 말한다. 포뮬러카는 길고 낮은 차체에 밖으로 노출된 두꺼운 타이어를 달고 있는 스피드 위주의 차량이다.

포뮬러 경주는 8기통 이하 3,000㏄의 F1, 8기통 이하 3,000㏄이하의 F3000(F2), 4기통 2000㏄이하의 F3 등으로 나뉜다.

F1은 포뮬러 경주중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한다. 세계 선수권 타이틀을 걸고 다투는 그랑프리 (GP로 줄여 부름) 레이스는 F1으로 행해진다.

매년 유럽과 호주, 아시아, 북 남미지역의 16개국에서 총 16레이스가 2주 간격으로 3월부터 11월까지 개최되며, 각 나라에서 열리는 레이스는 개최국의 이름을 앞에 붙인다.

F1 그랑프리는 올림픽, 월드컵에 버금가는 세계 최대 빅 스포츠쇼 가운데 하나로 세계 150 여개국에 중계돼 40억 이상이 시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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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 경기가 열리지 않았던가, 혹시? 암튼 일본만 해도 팬이 많아서 아시아 주최국 중 하나인 모양이다. 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데, 팬들 극성이 장난 아니다.

암튼 이 영화는 세계 선수권을 세 번이나 차지했던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스포츠 세계의 '정치' 때문에 피해도 많이 본 세나의 짧았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데, 자동차 경주 장면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고, 그의 따뜻했던 인품과 걸출한 재능, 그리고 노력에 촛점을 맞춘다. 처음 유럽 무대에 데뷔했던 십대 시절부터 경주 중 불의의 사고로 죽었을 때까지 주로 텔리비전 자료화면을 가지고 만든 영화인데, 영국 제작답게 쓸데 없는 감정의 과잉이나 영웅만들기 분위기는 거의 없으면서도 매우 흡입력이 강하다. 훨씬 유명한 마틴 스콜시지가 만든 조지 해리슨 기록영화보다  뛰어나다.

그는 브라질의 국민영웅이었다. 난 축구선수만 그런 줄 알았더니....극심한 빈부격차, 가난, 그에 따라 만연하는 범죄로 얼룩진 나라 브라질이 '유일하게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게 바로 세나였다. 그는 늘 국기를 갖고 경주를 하고, 우승할 때 일단 국기부터 흔들었다. 브라질의 불우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활동도 많이 했고. 그의 사후 지금까지 천 이백만명의 교육을 그의 재단에서 지원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늘 죽음과 부상의 위험 속에서, 또 우승이라는 절대절명의 목표달성을 위해 받아야 하는 엄청난 부담감과 공포에 대해 그는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설정한 목표를 향해 굽히지 않고 정진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더우기 그는 자동차 경주 생활이 끝난 후의 자기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미리 준비한 사람이었다. 또한 수퍼스타 답지 않게 겸손하고 소박했다. 브라질에서는 성인 취급을 받는다고. 겨우 34세에 새로 개발된 신형 경주차로 시합하다가 원인 모를  충돌로 비극적으로 죽었다. 자동으로 모든 게 조절되고, 레이서는 그저 속도만 내면 되는 신형 경주차를 그는 탐탁치 않아 했다. 레이서가 역량을 발휘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게 이유였다. 그가 죽은 것도 운전 부주의가 아니라 차량 내부의 문제였으리라고 사람들은 짐작한다. 그만큼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감독은 Asif Kapadia. 영국의 다큐 전문 감독이다. 이 영화로 BAFTA말고도 다수의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여럿 받았다.


김미 셸터 70년대 영화


69년의 우드스탁 공연에 이어 70년도에 '서부의 우드스탁'을 노리며 롤링 스톤즈가 기획했던 Altamont Free Concert는 무참하게 실패로 끝났다. 한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고, 절도에 폭력이 얼룩지는 바람에...이 기록영화는 그 생생한 현장과, 뉴욕에서의 스톤즈 공연의 하일라이트를 모아 만든 영화이다.

먼저 뉴욕 공연은 스톤즈가 얼마나 대단한 밴드인지 여실히 보여 준다. 요즘처럼 휘황찬란한 조명이나 분장, show적인 요소 하나 없이도 음악만으로 압도해 버리는 옛 밴드들이 그립다. 중간에 짧은 인터뷰도 나오는데, 기자가 밴드생활이 할만 하냐고 물으니 "성적으로는 만족, 재정적으로는 불만족, 철학적으로는 노력 중"이라고 믹 재거가 재치있게 답한다. 지난 번에 봤던 조지 해리슨의 기록영화에서도 한창 잘 나가던 비틀즈에게 돈 많이 버냐고 기자가 물으니 조지가 "우리는 돈이 별로 없어요, 우리 돈은 대부분 여왕에게 가지요, 그녀가 부자예요"하며 웃기던 게 생각난다.

사실 세계적인 밴드이긴 했지만, 영화를 보면 미국 공연 가서 겨우(?) 홀리데이 인에 묵는다. 요즘 같이 리무진이 마중 나오지도 않는다.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몰라도, 순회공연은 참말로 피곤한 일이지 싶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극성팬들에게 시달리고, 힘든 공연을 강행해야 하고...

캘리포니아주의 알타몬트에서 한 이 공연에는 30만 정도의 히피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편집과 촬영을 정말 잘 해서, 당시 젊은 히피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죄 약에 취해 제 정신인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이고, 심하면 벌거벗고 무대로 돌진하거나, 자기네끼리 붙어 싸우고, 한 마디로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가관인 건, 질서유지를 Health Angels가 맡았다는 것. 하루에 돈 말고 맥주 500불어치를 주기로 하고 고용했다는데,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는 이들은 관객들과 충돌을 예사로 일으키고, 결국 약에 취해 총을 들고 무대로 돌진하던 한 젊은이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대체 약에 취한 히피들을 수십 만 모아 놓고 뭔 질서 유지며, 헬스 엔젤스란 말인지. 의사도 없고 경찰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기획을 한 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우드스탁 흉내를 내보려다가 망신살만 뻗친 셈. 공연 뒤 영상을 편집하는 스튜디오에서 편집과정을 보면서 씁쓸해하는 스톤즈 멤버들의 표정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위대하다. 그리고 이 기록영화는 당시 분위기를 정말 생생하게 잡아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만하다.

그 정신 없던 히피들, 지금은 노인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살고 있겠지?^^

1970년 Albert Maysles와 David Maysles 연출.
원제:Gimme Shelter


조지 해리슨-물질적인 세계에서 살기 2010년대 영화

2011년 영국의 BAFTA 영화제에서 기록영화 부문 수상후보로 오른 영화라 봤는데, 한 마디로 말해 '너무 길다.' 요즘 기록영화 만드는 데 재미 붙인 마틴 스콜시지 연출인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 영감은 떨어지고 대신 아집은 느는 게 진리인 듯. 대부분의 뛰어난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세 시간 반 동안 조지 해리슨의 일생에 대해 모은 온갖 자료들을 볼 필요는 굳이 없는 듯. 반쯤으로 뚝 잘랐으면 무난할 뻔했다. 

조지 해리슨은 사실 대중의 관심의 중심에 서있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밴드인 비틀즈의 멤버였는데도, 폴과 존의 그늘에 가려 그들이 작곡한 노래들에 그들이 원하는 연주를 덧붙이는 역할 정도가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 따르면, "폴과 존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 까짖 꺼!" 라며 분기탱천해서 작곡을 시작, 결국 비틀즈 레퍼토리에 몇몇 훌륭한 곡들을 올린다(Something이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같은).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노래를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작곡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음악인의 범주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랄까? 어쩌면 조지 해리슨을 두고 세 시간 반짜리 기록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틀즈가 깨진 다음 비틀즈 시절에 써 놓은, 그러나 그들의 앨범에 감히(?) 올리지 못했던 곡들을 중심으로 솔로 앨범을 여러 장 발표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게 All things must pass(1970)이다. 여기에 유명한 My Sweet Lord와 What's Life?(개인적으로 요 노래 좋아한다, 가사 때문에). 무려 세 장짜리 앨범이고, 기록으로는 솔로앨범으로서는 이 세 장짜리가 세계적으로 처음이라고 한다.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영화를 보면 드넓은 시골 저택에 스튜디오를 차려 놓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느긋하게 작업하고 녹음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물이 좋았는지도. 

보통 조지는 비틀즈 멤버 중 가장 조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용하다가도 한 번 폭발하면 격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단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매우 잔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했던 모양. 특히나 가장 절친했던 에릭 클랩튼과의 우정은 유명한데, 조지의 아내 패티 보이드를 클랩튼에게 뺏긴(?) 건 유명한 일화. 그러나 클랩튼의 증언에 따르면 정식으로 사귀고 결혼하기 전에도 이미 그들끼리의 '와이프 스와핑'이 있었던 듯. 뭐 연예인이란 게 그렇지...^^ 

또 하나 괄목할만한 그의 기록은, 71년에 최초의 대규모 자선공연을 열었다는 점. 절친했던 인도의 시타 연주자 라비 샹카와 함께 기획한 그 공연에는 밥 딜런, 에릭 클랩튼, 배드 핑거 등 쟁쟁한 음악인들이 출연, 방글라데시 해방전쟁의 난민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모았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이런 류의 공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조지 해리슨 하면 인도문화에 심취했던 걸 빼놓을 수 없다. 하긴 그게 60년대 서구에서 크게 유행한 풍조이기도 하지만. 요가의 구루들을 영접하고 평생 명상을 했으며, 로마 캐톨릭으로 자랐지만 범종교적인 신앙(?)을 갖고 살았다. 그래서 또 다른 솔로 앨범 제목도 '물질적인 세상에서 살기(Living in the Material World)라고 붙였는지도. 나름 힘들었는지도, 세속에서 살기가.^^ 그는 비틀즈 멤버들에게도 인도의 신비주의를 전수했고, 그의 노래들에는 영적인 추구가 들어 있다고 영화에서는 말한다. 인도 문화를 만난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채식을 했다고. 

그의 관심사는 음악뿐 아니라 영화와 자동차 경주 등 다양했다. 특히 영화계쪽 친구들이 돈이 없어 영화를 못찍는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 집을 저당잡혀 제작비를 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영화는 바로 Life of Brian(1979). 이 영화는 개그 영화인데, 예수의 일생을 풍자한 것으로, 당시 불경죄로 대단한 비난을 받았다. 상당히 재밌다. 특히 테리 길리엄과 친해서, 이 영화에도 그가 출연하지만 그의 대표연출작이랄 수 있는 '문크하우젠 남작의 모험(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 '시간 도둑' 등을 제작했다(그런 줄 알았으면 더욱 고마워하면서 볼 걸 그랬다^^). 

작년 영국여행 때 리버풀에서 비틀즈 투어 중 들렀던 조지의 생가다. 방 두 칸짜리 이 소박한 집에서 버스 기사였던 아버지 및 가족과 십대때까지 살았다(참고로, 링고 스타의 생가는 더 형편없고, 폴과 존의 집은 중산층 주택이더라). 

암튼, 이 기록영화는 쓸데 없이 길고, 구심점 없이 잡다한 자료들과 상당히 지루한 인터뷰들을 모아 놓은 짜집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조지 해리슨과 비틀즈에 대한 추억이 남다른 분들에게는 큰 문제 없겠지만(나도 사실 그 중 하나다^^). 

라메리카 90년대 영화


유럽의 최빈국, 작은 산악국가,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정도가 내가 아는 알바니아에 대한 지식의 거의 전부다. 관심도, 애정도 없던 이 낯선 나라가 갑자기 내 가슴에 들어왔다, 라고 한다면 너무 가식적인 감상일까? 어쨋든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히 알바니아인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먹여살리지 못할 때(물론 그런 정권이 유지되는 데에는 국민의 책임이 따르기는 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국민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흔히 알바니아는 북한과 자주 비교된다. 공산정권, 그것도 한 사람이 40년 가까이 집권한 공산독재국가가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우방(?)과도 결별한 채 독자노선을 걷다가 경제가 다 거덜나고, 국민은 굶주림을 피해 너도나도 외국으로 불법이주한다. 말하자면 가까운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보트피플'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공산독재가 막 끝나고 개방을 시작할 무렵인 1991년의 알바니아에 두 이태리 사기꾼이 사업가인 척 하고 들어와 종이회사를 차리고 정부 보조금을 타내려 하는 데서 시작한다. 알바니아인이 사장이어야 한다는 정부 방침 때문에 그들은 지난 이차대전 종전 후 최근까지 정치범으로 수용되어 있던 피폐한 노인을 수배하여 가짜 사장으로 앉히려고 하는데...

알바니아에게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백 년전쯤의 이태리인(특히 시실리인)들에게 미국과 같다. 그들도 가난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고국으로 힘들게 번 돈을 부쳤다. 아드리아해를 건너면 바로 이탈리아의 바리에 닿는 발칸반도 서쪽의 알바니아인에게, 이탈리아는 바로 '라메리카'인 셈이다. 물론 보통의 알바니아인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극중 노인은 바로 자신의 부모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시실리 출신의 이탈리아인이었고, 그래서 우여곡절을 거쳐 이탈리아로 가는 배에 오른 그는 50년 전 이차대전 참전을 위해 헤어져야 했던 가족을 만나러 '미국'으로 가는 '스무 살 청년'의 환상으로 돌아가 있다. 또한 사기꾼으로 알바니아에 왔던 청년 지노도 자신이 등쳐먹고 멸시하던 알바니아라는 나라와 사람들, 그리고 그 노인과 원치 않게 섞이면서 세상과 삶을 다르게 보게 된다. 영화 속에서 노인과 청년의 대조, 알바니아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당시의 극악한 현실이 보는 이의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하지만, 인간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그러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끼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영화속의 인물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치 다큐 같이, 가식이나 치장 없는 연출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든다.

1994년 Gianni Amelio 연출. 이탈리아, 알바니아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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